눈.내.린.날

토요일 저녁 늦게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거의 뜬눈으로 지새고는 포항 가는 일요일 첫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밤새 내린 눈으로 경기도, 충청도 지역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진 상황이라 안전한 기차를 선택하기로 하고 새벽에 기차표를 예매했다.

시끄러운 서울 하늘을 조용히 덮어버린 눈으로 기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이 이어졌다. 기차에 올라 포항까지 가는 5시간 동안 책 십여 페이지를 읽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걱정했던 눈은 영동을 넘어 경상도에서는 구경을 할 수도 없었다.

포항은 아직 따뜻한 남쪽나라다. 노환으로 오래 고생하신 할아버지는 얼마 전 혈변을 보시고는 계속 깊은 잠만 주무시고 계셨다. 어린 나를 등에 업은 채로 포항 앞바다를 바다거북처럼 헤엄쳐 다니셨던 그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안 계시고, 몇 일째 영양 주사만으로 영양을 보충하며 가끔씩 가뿐 숨을 내 몰아 쉬고 있는 힘없는 노인 한 분이 병원 침대에 누워계실 뿐이었다.

주무시고 계신 할아버지에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었다. 꼭 눈뜨고 일어나시라고 손을 힘껏 잡아드리고 싶었지만 그것 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혈액순환이 악화되어 발이며 손이 퉁퉁 부어있어서 살짝 쓸어드릴 수 밖에 없었다. 대신 할아버지 간병으로 많이 쇠약해지신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몸살 난 어깨, 팔, 다리를 주물러드렸다.

막차를 타고 서울역에 올 때까지 어릴 적 철없던 내가 할아버지에게 했던 버릇없는 일들이 생각이 나서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서울역에 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남쪽나라에서 다시 난 겨울로 돌아와 있었다. 눈길 위를 조심조심 달리는 의정부 행 1호선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내가 할아버지를 뵙고 온 바로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힘든 병원 생활을 끝내고 영원히 잠 드셨다. 월요일 저녁 할아버지 빈소를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으면서 계속 중얼 거렸다.


'정말 다행이야. 할아버지를 어제 뵙고 온 건 정말 잘 한 일이었어. 정말 다행이야.'


서울에 눈 온 풍경을 할아버지께 보여드리려고 담아갔던 사진들과
할아버지께 보여드리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찍은 사진들을 이제서야 정리해서 올립니다.


눈 내린 서울역


출발을 기다리며...


수원쯤을 달리고 있는 새마을호


맑게 개인 포항역


포항역을 막 출발하며...


힘든 일정을 마치고 Good Night Kiss


서울역 도착


다시 서울역에서 의정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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